2016. 10. 25 낭만극장 관람
낭만극장에서 요즘 하고 있는 버트 랭캐스터 기획전의 영화중 하나다.
원래 나한테 버트 랭캐스터는
비스콘티의 The Leopard에서의 나이든 우아한 귀족으로만 인식된 배우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남자도 우아할수 있다는 말이 뭔지 이해가 되었었다.
낭만극장 기획전덕분에 버트 랭캐스터 젊은 시절도 보게 되었는데
나이든 모습만 기억에 있었기에
기획전에서 처음 봤던
The Unforgiven(클린트 이스트우드 x 오드리 헵번 나오는 서부영화 o)
에서 처음에는 잘 못알아봤다 ㅋㅋ
영화가 처음 시작하면 여주인공이 바로
누군가의 살인모의 통화를 듣게 되고
전화교환원에게 막 자신의 사정을 구구절절 다 이야기하고
계속 따지면서 어떻게 어떻게 해달라하고 난리가 나는데
사실 이것때문에 처음에는 여주인공이 좀 비호감이었다.
관객과 주인공과의 관계가 전혀 성립되지 않아있고
동일시도 안 되어있는데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개인적으로 오히려 좀 반감을 느꼈다.
그런데 여주인공이 처음이 좀 지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회상을 하면서 대학교때 자신의 남편을
만난때를 보여주는데 난 그걸 보면서
그 여주인공이 단박에 이해되면서
처음에 보여줬던 행동도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어마어마한 부잣집 딸로 크면서
평생 자신이 갖고 싶은건 모두 가지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을 처음 만났을때 엄청난 자신감을 보여주는데
그게 너무 매력있고 바바라 스탠윅이 잘 표현해서
여주인공한테 넘어가버렸다 ㅋㅋㅋ
위의 사진도 사실 저 장면이 아니라
저 부분의 다른 장면을 원했는데
사진이 없어서 저 사진으로 대체...ㅋㅋㅋ
보면서 가십걸의 블레어가 엄청 생각났다 ㅋㅋㅋㅋㅋ
가십걸 책 읽을때 블레어를
"She was spoiled, but she wasn't lazy"
라고 표현되어있는데 이 영화 여주도 정말 딱 그렇다 ㅋㅋ
원하는건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데
원하는걸 가지려고 엄청 노력한다 ㅋㅋ
이 영화보면서 내내 느낀건 분해하기 꽤 좋은 영화일것 같다 라는 생각.
영화도 정말 그냥 재미있는,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시간때우기용 영화들이 있고
분해해서 의미부여를 하기 좋은 영화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하는듯 하다.
원작이 특이하게 라디오극이다.
그리고 라디오극이 원작이라서 그런지
영화의 내용전개가 대부분 누군가의 회상을 통해 전달되는 특성이 크다.
끝없는 회상, 회상, 회상.
심지어 회상 속 회상도 있다 ㅋㅋ
물론 그게 여자 주인공이 몸이 안좋아서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된다는
설정상 자연스럽게 커버가 되긴 하다만.
영화는 맨 처음 자막으로도 나오듯이
전화라는 매체의 쓰임새,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 또는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면서 매체 혹은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영향받은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영화의 설정 자체에서도 이미 드러나듯이
세상의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여주인공 레오나같이 자기 집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타인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아도
세상과의 통로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에 긍정적이지 않다.
초반에 주인공은 남자 두명의 살인 모의 통화를 엿듣게 되는데
그때 주인공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그녀는 단지 듣는 것만 가능한 입장이자 일방적 수용자일뿐이다.
주인공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여러 사람과
통화를 하지만 실제적 접촉이 결여된 상태이기에
그녀는 통화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실질적인 연결 혹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통화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주인공 자신과 연관이 있는 상황이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자 회상일뿐이고
그녀는 그 일 혹은 상황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앞에 말했듯이 여기서도 단지 듣는 것만 가능한 입장이자
일방적인 수용자 입장인것이다.
어찌보면 그녀와 제일 가깝고 실제적 접촉의 가능성이 제일 큰 '남편'이라는 존재조차
영화의 처음부터 부재하고 영화 내내 전보 혹은 마지막에는
통화로만 그녀와 소통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남편과 여주인공 모두 죽거나 체포되는 결말로 갈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사회에서
실질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여주인공과 남편에게는
죽음 혹은 사회로부터의 격리(체포)만 남아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남편과 여주인공이 통화를 하면서
남편은 여주의 신체적 움직임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여주가 직접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움직이고
바깥 세상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도록 하여
그녀가 살수 있도록 하지만 그녀는 움직일수 없다면서 해내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여주인공이 죽을때 그녀를 죽이는
사람조차 얼굴이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그림자로만 표현된다.
영화는 전화라는 1차적 의미에서의 매체만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에서의 매체에 대해서도 다룬다.
간단하게는 주인공이 자신의 옛 연적과 지하철역에서 통화를 할때에
전철이 지나가는 큰 소리는 둘의 소통을 방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또 생각해보면 '기술'이라는 것은
그것이 사람을 "대신"해서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주인공은 원래 처음 남편을 만나서
같이 춤을 출때에 그를 유혹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연적을 선택하고 가버린다.
춤이라는 직접적인 접촉을 하는 상태에서
그녀는 남자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한다.
하지만 후에 둘은 같이 차를 타고 남자의 고향에 가고
그 차 안에서야 그녀와 남자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차라는 기술 혹은 매체를 통해서 형성된 관계이기에
그렇기에 여주인공과 남자의 관계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기반을 가진 관계일수가 없다.
라디오나 전화는 둘 다
직접적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목소리만으로 소통하는 매체다.
원작이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한 라디오극이지만
정작 내용은 그러한 매체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꽤 아이러니한듯 싶다.
좀 정리가 안된 상태로 횡설수설한 느낌인데
과연 제 3자가 이걸 읽으면 이해가 될까 싶당..............ㅎ
영화 내내 전환기의 매체이론 수업이 자꾸 생각나서
괴로웠다.....
끔찍했던 수업..........크흡
수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만.....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고 매체적 면에 집중해서 분석하면
재밌겠다고 느꼈지만
매체이론 수업이 자꾸 생각나서 좀 괴로웠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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